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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모험’을 장려하는 놀이터들이 세계 곳곳에 있다. 정해진 루트를 따라가기보다, 직접 찾아가면서 건강과 창의성, 사회성을 발전시키도록 설계한 곳들이다. 다채로운 콘셉트의 놀이터들을 소개한다.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 가지고 놀 수 있다.” 판에 박힌 놀이터 디자인을 비판하며, 다양한 재료로 자연을 닮은 자유로운 놀이터를 만드는 놀이터 디자이너 귄터 벨치히Günter Beltzig의 말이다. 그는 어른들의 미감에 맞춘 채로 위험 요소를 최대한 차단하는 데 집중한 대부분의 놀이터들은 어린이들의 놀이를 제한한다고 말한다. 어린이들은 일부러 어려운 장애물을 찾아 넘으려 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런 탐사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위험에서 지킬 줄 알게 된다고도 지적한다. 넘어지지 않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안전하게 넘어질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와 같은 생각으로 어린이들의 ‘모험’을 장려하는 놀이터들이 세계 곳곳에 있다. 정해진 루트를 따라가기보다, 직접 찾아가면서 건강과 창의성, 사회성을 발전시키도록 설계한 곳들이다. 산악 지대를 닮은 놀이터, 야생동물을 떠올리게 하는 놀이터, 자연의 순환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든 놀이터 등 다채로운 콘셉트의 놀이터들을 소개한다.
이탈리아 출신 장난감 디자이너 겸 일러스트레이터인 루카 보스카르딘Luca Boscardin의 <애니멀 팩토리Animal Factory> 프로젝트는 야생동물의 모습을 형상화한 강철 구조물들을 선보인다. 설치미술 작품처럼도 보이는 이 구조물들은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기어오르고, 매달릴 수도 있는 철봉 놀이 기구다. 기린, 악어, 고릴라, 늑대, 코끼리의 모습을 추상적으로 만들었다. 실제 동물들의 몸 크기를 반영했다.
선명한 색으로 칠해진 동물들은 완전 전면이나 측면에서는 선 몇 개를 겹쳐놓은 것으로 보일 정도로 단순한 모양이다. 하지만 약간만 각도를 틀어서 보면 모델이 된 동물의 특징적인 모습이 곧 연상된다. 보스카르딘은 최초 스케치를 그릴 때부터 선을 최소한으로 그리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고 밝혔다. 단순하면서 기호에 가까운 디자인을 통해 어린이들이 직접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지 스스로 상상해 보는 능력을 자극하고 싶었다고 한다.
<애니멀 팩토리Animal Factory>는 예술인 커뮤니티로 잘 알려진 암스테르담의 NDSM 부두 인근에 설치되어 있다. 보스카르딘은 어른들도 길을 지나다 잠시 앉아있거나, 자전거를 잠시 묶어둘 수 있는 다용도 시설로 쓸 수 있다고 소개했다.
중국 창저우의 한 주택가에 있는 이 놀이터는 바닥면에 재미있는 굴곡을 만들고, 안전바를 설치한 것 외에는 특별한 시설이 없는 단순한 형태의 놀이터다. <더 폴즈The Folds>라는 이 놀이터의 이름은 바닥면이 접혀 있는 형태에서 따왔다. 어린이들은 ‘접힌’ 언덕을 뛰어오르고 내려갈 수 있고, 사이사이로 다양한 모양으로 조성된 터널과 경사면을 활용해 숨바꼭질을 할 수도 있다. 놀이터의 한쪽에는 계단식 벤치를 비규칙적인 원형 구조물이 감싼 형태의 휴식 공간이 있다.
보통의 놀이터들은 어린이들에게 정글 짐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른다거나, 매달리는 코스를 끝까지 완주한다거나 하는 등의 목적을 제시한다. <더 폴즈The Folds>를 설계한 디자인 스튜디오 ‘아뜰리에 스케일Atelier Scale’은 이곳에서는 어린이들이 목적보다는 자신의 본능과 감각에 좀 더 의지해 자기만의 동기로 움직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 어린이들이 굴곡이 있는 땅 위를 걸음으로써 발과 손을 더 많이 대지에 접촉하고, 이를 통해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공간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도쿄에 있는 마치다 고바토 유치원 놀이터에는 하늘을 향해 열린 야외 공간인 ‘빛의 광장’과 ‘하늘의 광장’이 있다. ‘하늘의 광장’은 테니스 코트 4개 크기의 거대한 해먹이 걸린 공중 놀이터다. 하늘로 무한하게 연결된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한 곳으로, 신체 활동과 함께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빛의 광장’은 자연을 더 다양한 방식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넓은 흰색 공간 한 쪽에 반원형의 벽이 있고, 벽에 작고 둥근 채광 창이 여럿 나있다. 채광 창은 옅은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초록색 유리로 덮여 있고, 크기도 제각각이다. 이 채광 창을 통해 들어온 색색깔의 햇빛은 흰색 바닥에 오롯이 투영된다. 하루 동안 해가 움직이면, 그에 따라 채광 창으로 들어오는 빛과 그림자의 형태와 위치도 바뀐다. 어린이들은 이 해의 그림자를 둘러싸고 관찰하고, 밟고, 이야기한다. 어린이들에게 자연의 순환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호기심을 키워준다. 창문 아래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클라이밍 홀드와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어린이들은 여기에 매달려 기어오르고, 매달리고, 뛰어오른다. 위쪽은 하늘을 향해 개방되어 있지만 개폐식 차광막이 준비되어 있어 강한 햇빛이나 비, 눈을 피할 수 있다.
뉴질랜드 출신 아티스트 마이크 휴슨Mike Hewson은 지난해 말 멜버른에 <록스 온 휠즈Rocks on Wheels>라는 이름의 공공 놀이터를 설계했다. 멜버른 사우스뱅크 불러버드에 위치한 이 놀이터는 거대한 바위들을 아이들이 타고 오르며 산악지대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바위들은 자연스럽게 굴러온 것 같은 모습과 배치를 하고 있다. 바위 위와 사이사이에는 최소한의 손잡이와 철봉, 외나무다리, 미끄럼틀, 사다리, 로프, 정글 짐, 그네 등이 불규칙적으로 설치되어 있다. 건설 현장에서 나온 폐기물을 재활용해 만들었다. 휴슨은 “모험심 강한 어린이들”이 매달리며 노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바위 위 어디에도 평평한 발판은 설치되어 있지 않다. 난간도 최소화했다. 이곳에서 놀기 위해서는 바위의 거친 면 중 어디가 안전할지 스스로 판단해 붙잡고 오르내려야 한다. 다만 바닥은 부드러운 소재를 깔았다. 한 가지 더 특징적인 점은 놀이 기구 곳곳 틈새에 작은 인형들을 보물찾기 상품처럼 숨겨두었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모험’을 한 후에는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놀이의 일부로 기획됐다.
바위와 철봉, 바스켓 등이 아슬아슬한 모양으로 연결되어 있는 모습에 대해, 멜버른 시는 “위험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두 강철 막대로 땅에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다”라며 안전 테스트를 거쳤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 놀이터에서 놀았던 어린이들이 이와 비슷하게 생긴 환경을 보고 그곳 역시 안전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을 거라는 지적도 있다.
글/ 박수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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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design.co.kr/article/27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