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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역할은 점점 더 비가시적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제 디자인은 더 이상 형태와 조형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것을 미리 돌보는 감각이며, 아직 오지 않은 문제를 미리 감지하는 감응의 체계로 사회적 흐름에 따라 그 의미 또한 진화해 가고 있다. 2025년 3월, 일본 도쿄의 TOKYO NODE에서 열린 ‘Kering Generation Award Japan’은 이러한 새로운 디자인의 방향을 뚜렷하게 드러낸 행사였다. “럭셔리와 지속가능성은 동일하다”는 슬로건 아래, 케어링(Kering)은 전통적인 명품 산업의 경계를 넘어, 순환 경제와 지속 가능한 소재 혁신을 이끄는 스타트업들과의 협업을 선언했다. Kering Generation Award는 2018년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 시작된 글로벌 프로그램이다. 2025년 일본에서의 첫 개최에서는 약 130여 개의 스타트업이 패션 및 뷰티 산업의 친환경적 전환을 주제로 지원했고, 두 차례의 피치 심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3개의 기업이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이 상의 핵심은 단지 기술적 혁신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이 산업 생태계 전체를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는가를 묻는 데 있다. 심사에는 골드윈 대표, 사티스제약 CEO, 교토공예섬유대 교수 등 산업과 학계를 아우르는 9명의 전문가가 참여해, 기술력뿐 아니라 사회적 파급력과 실현 가능성, 지속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했다.
@Fermenstation
퍼멘스테이션(Fermenstation)은 2009년 설립된 일본 스타트업으로, 미생물 발효기술을 통해 산업의 가장 말단에서 버려지던 유기 폐기물을 고부가가치 소재로 바꾸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들은 버려지는 쌀겨, 커피박, 과일 껍질과 같은 식품 부산물에 주목하며, 발효 과정에서 발생하는 효소 작용을 통해 방향 성분이나 기능성 화합물을 추출해낸다. 예를 들어, 쌀겨는 발효를 통해 향료·식품 원료로 활용 가능한 락톤(lactone)으로 전환되고, 커피박은 바닐라 혹은 위스키 향을 내는 향료로 재탄생한다. 이들의 기술은 단순한 ‘재활용’에 머무르지 않고, 자체 개발한 미생물·효소 라이브러리, 데이터 기반의 조합 최적화 알고리즘, 그리고 R&D에서부터 대량 생산에 이르기까지 수직 통합된 프로세스를 보유하고 있어, 소재의 근본적인 재구조화가 가능하다. 기존에는 스킨케어, 헤어케어, 룸 스프레이 같은 화장품·아로마 제품에 활용됐으나, 최근에는 식품과 음료 영역으로도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퍼멘스테이션의 강점은 소재가 가진 감각적 특성과 기능성을 동시에 재해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아직 사용되지 않은 자원이 당연하게 사용되는 사회"를 지향하며, 버려짐과 잉여의 개념 자체를 새롭게 디자인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친환경을 넘어서, 폐기물에서 미래 산업의 새로운 미감을 추출하는 시도다.
@AMPHICO
Amphico – 물 없이 염색하고, 화학 없이 방수하다
2위에 선정된 암피코(Amphico)는 2018년 Kamei Jun이 영국 RCA에서 진행했던 연구를 기반으로 설립한 스타트업이다. 이들은 의류 산업이 안고 있는 세 개의 골치 아픈 과제 - 염색공정에서 발생하는 수질오염, PFAS 기반 방수 코팅의 인체 위해성, 합성 섬유의 재활용 불가능성 등 의류 산업의 구조적 문제 - 에 정면으로 맞섰다. 핵심 제품은 PFAS-free 통기성 방수 섬유와 무수염색 기술이 적용된 텍스타일이다. 일반적으로 고기능성 섬유는 여러 층의 소재로 구성되어 방수성과 통기성을 동시에 확보하지만, 이로 인해 재활용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암피코의 기술은 하나의 동일한 소재를 레이어로 구성하여 기능성과 단일소재화(재활용 가능성)를 동시에 만족시킨다. PFAS(유기불소화합물) 없이도 높은 발수성을 유지하며, 환경에 남지 않고 생체 축적도 없다.
염색에 있어 암피코는 화학염료나 대량의 물을 사용하는 기존 염색 시스템을 완전히 회피하는 기술을 보유했다. 여러 색의 실을 조합하여 색상을 구성하는 방식이 아니라, 수학적 모델과 색상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2,000가지 이상의 색상을 표현할 수 있는 실시간 매칭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덕분에 생산 공정에서 물 사용량을 최대 90%, CO₂ 배출량은 50~75%까지 줄일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기술이 기존의 방직·직조 설비에서 바로 생산 가능하다는 것이다. 첨단 기술임에도 대규모 인프라 교체 없이 적용할 수 있어, 산업화와 확장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암피코는 현재 합성섬유 외에도 비스코스, 레이온, 큐프라 등 인공 셀룰로오스 섬유에도 기술을 적용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며, 미세플라스틱이 배출되지 않는 원료 체계 전환까지 시야에 두고 있다.
Algal Bio _ 바다 속 30만 종의 가능성: 미세조류가 여는 새로운 세상
3위를 수상한 ‘알갈 바이오(Algal Bio)’는 생물학적으로 가장 오래된 존재 중 하나인 ‘미세조류(microalgae)’에 집중한다. 자연계에는 약 30만 종의 미세조류가 존재하지만, 산업적으로 활용되는 것은 단 0.01%에 불과하다. 알갈 바이오는 도쿄대학교의 20년 이상 축적된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1,260종 이상의 균주를 확보해 ‘바이오 파운드리 플랫폼’을 구축했다. 이들은 단순한 배양을 넘어, 특정 프로젝트에 최적화된 미세조류를 매칭해 상용화 가능한 원료로 개발한다. 활용 범위는 넓다. 화장품 원료, 건강기능식품, 생분해성 플라스틱, 잉크 소재, 농업 자재까지, 미세조류는 기존 산업이 놓치고 있던 유기적 기능성을 품고 있다. 특히 지구상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이산화탄소를 고정할 수 있는 생물이라는 점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생물 기반 기술로서의 가치가 높다. 알갈 바이오의 비전은 명확하다. “미세조류가 자원으로서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는 미래.” 이들은 미세조류를 통해 화석연료 기반의 생산체계를 대체할 수 있는 순환형 생물 기반 공급망 구축을 목표로 한다. 미세조류의 에너지 효율, 성장 속도, 유연한 성질은 기존 산업 구조를 재편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들의 기술은 단순히 신소재 개발을 넘어, 디자인이 아직 산업화되지 않은 생명자원에까지 책임을 확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라질 것을 돌보는 감각, 그것이 디자인이다
Kering Generation Award Japan이 보여준 진정한 가치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태도의 전환이었다. '만드는' 것보다 '돌보는' 것, '앞서가는' 것보다 '멈추고 되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시대적 요청을 산업 구조 안에서 구현한 시도였기 때문이다. 수상 기업들의 접근 방식에서 이런 철학이 명확히 드러났다. 이들이 다루는 것은 새롭고 번뜩이는 소재가 아니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자원의 윤리다. 피노 CEO가 "해결책의 절반은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노베이션에 달려 있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단순한 기술적 혁신이 아닌 사고 체계 자체의 재편을 의미했다. 세키야마 대표집행임원의 '퍼스트 펭귄' 이야기는 이런 맥락에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위험을 감수하고 미지의 영역으로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시스템의 지속불가능성을 인정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용기를 말하는 것이었다. 다부 CSO가 언급한 일본 스타트업의 독창성, 즉 "첨단기술과 전통공예의 공존"은 이런 디자인 철학의 구체적 발현이다. 기술이 전통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의 가치를 보존하고 연장하는 수단이 되는 것. 우메자와 회장이 제시한 일본의 글로벌 리더십 조건들 – 과학기술 역사, 협업 문화, 정부 의지, 투자자 지원 – 역시 경쟁이 아닌 협력의 생태계를 그린다. 디자인은 더 이상 형태가 아니라 행위이자 태도다. 혁신은 더 이상 기능이 아니라 감수성의 깊이로 측정되고 있다. 사라질 것을 미리 돌보는 감각,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디자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또 다른 이름인것 같다.
참고사이트
https://wired.jp/branded/2025/04/02/kering-generation-aw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