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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제너러티브[Regenerative] 사고의 등장
21세기 도시 개발은 지속가능성을 넘어서는 새로운 개념을 요구하고 있다. ‘도쿄건물[東京建物]’이 2024년 11월 발표한 Regenerative City Tokyo(RCT) 구상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응답하는 프로젝트로 주목받고 있다¹. 기존의 지속가능한 접근이 현상 유지에 머물렀다면, 리제너러티브[Regenerative]* 개념은 생태계와 사회가 스스로 회복하고 발전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도쿄역 앞 YNK(야에스·니혼바시·교바시) 지역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공간 재개발을 넘어서 도시와 지방이 상호 재생하는 새로운 관계성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각 지역의 자연적, 문화적, 경제적 특성을 살리면서도 서로 보완하는 ‘바이오리저널(Bioregional)*' 철학을 통해 도시 공간이 지닌 잠재력을 극대화하려는 시도가 돋보인다².
* Regenerative는 1990년대 존 틸만 라일(John Tillman Lyle)이 체계화한 개념으로, 지속가능성을 넘어 생태계와 사회 시스템이 스스로 회복하고 발전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접근법을 의미한다.
* 바이오리저널: Bioregional 또는 Bioregionalism은 생태적 경계를 중심으로 한 지역주의 개념으로, 정치적·행정적 경계가 아니라 기후, 지형, 수계, 생물 다양성 등 자연 생태계의 흐름을 기준으로 한 지역 단위를 기반으로 삶의 구조를 재편하려는 이론이다. 디자인과 도시계획의 맥락에서는 인간 활동이 해당 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며 자급적이고 순환적인 지역 시스템을 지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종종 Regenerative Design과 결합되어, 지역 고유의 자원·지식·문화에 기반한 설계를 촉진한다.
ⓒ Brand Green _ 왼쪽은 ‘맛있는 이유가 보이는 야채’라는 컨셉의 Next Green Vegetables, 오른쪽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토양 중심의 생산 시스템 Next Green Method를 시각화한 도표이다.
‘Soil Solution’, ‘Agri LCA+’, ‘Next Green Credit’의 세 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지속가능성을 넘어선 재생형 농업 모델을 구조화하고 있다.
공간과 경험의 통합적 접근
RCT 구상의 핵심 공간 중 하나인, 2026년 준공 예정의 'TOFROM YAESU'는 새로운 도시 개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프로젝트가 될 전망이다³. 이 복합시설은 단순 업무,상업 기능을 넘어, 도시와 지방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기획되었다. 2025년 7월 발표된 'Next Green Revolution' 참여는 이러한 리제너러티브 철학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사례⁴로 해석된다. 예컨대 일본 최초로 '맛있는 이유'를 시각화한 농업벤처의 'Next Green Vegetables'가 'TOFROM YAESU TOWER'의 공용층에 있는 'Wab.'내 식당에서 제공하는 것은 단순한 식음료 서비스를 넘어서는 총체적 경험 디자인의 사례라 할 수 있다⁵. 이곳은 식당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맛과 지속가능성, 정보와 감성, 선택과 윤리를 함께 체험하는 하나의 감각적 도시 리터러시 공간으로 기획되어 있다. 여기서 핵심은, 생산자의 철학과 지역 생태계의 가치가 시각적·체험적 언어로 번역되어 전달되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이다. 공간, 콘텐츠, 서비스가 별개가 아니라 서로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통합된 이 접근은, 도시 공간을 단순한 장소가 아닌 리제너러티브 감각 훈련의 장으로 재정의한다.
가치 순환을 위한 시스템 구축
RCT 구상에서 가장 혁신적인 부분은 환경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전환하는 구조적 실험에 있다. BG[Brand Green,차세대 농업벤처 주식회사]가 개발한 'Next Green Credit’은 일본 최초의 리제너러티브 기반 환경 크레딧으로, 기존에 보이지 않던 토양의 가치를 가시화하고, 이를 경제적 순환 구조로 연결하는 체계다⁶. 이 시스템은 기존에 간과되어온 수질, 생물다양성, 미생물 군집 등 토양 생태계가 가지는 수확물에 대한 본질적 기여를 ISO 국제표준 기준과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와의 공동 평가 체계를 바탕으로 정량적으로 모델링해, 이로써 보이지 않던 생태 순환이 ‘거래 가능한 가치’로 전환된다. 이는 단순한 데이터 시각화를 넘어서 복잡한 환경 정보를 이해 가능한 형태로 번역하는 통합적 접근의 성과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이렇게 창출된 환경 크레딧을 통해 'Wab.' 식당의 탄소중립을 실현하고 지방 농가에게 실질적 경제적 환원을 제공하는 선순환 구조를 제공한다. 이는 환경 윤리, 도시 소비, 농업 지속가능성이라는 이질적 가치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통합하면서, 도시와 지방, 감각과 윤리, 생산과 소비를 연결하는 순환적 생태-경제 모델로 기능한다.
미래 도시 개발의 방향성
RCT 구상은 2030년까지 도쿄를 국제도시의 새로운 롤모델로 만든다는 비전 아래 2027년 말까지 10개 이상의 공창(共創, co-creation) 혁신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⁸. 이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농가와 도시 워커 간의 직접적 교류를 통한 상호이해 증진 프로그램이다⁹. 이는 물리적 공간 개발을 넘어서 사회적 관계성을 구축하는 접근법으로, 커뮤니티 형성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개별 시설이나 공간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에서 사회 전체의 관계성과 가치 체계를 재구성하는 것으로 역할이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일본의 전통적인 지역 공동체 문화와 현대적 개발 방법론을 결합한 이 모델은 아시아 지역의 문화적 맥락을 고려한 접근법으로서 의미가 있다. 한국의 도시 개발과 사회혁신 분야에서도 이러한 통합적, 시스템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접근의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RCT 구상은 참조할 만한 중요한 선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