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more

폐허에서 소재로, 기억에서 미래로 — 노토 검은 기와의 두 번째 생명

  • Date

    2025.10.31
  • Share

폐허에서 소재로, 기억에서 미래로 — 노토 검은 기와의 두 번째 생명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노토 검은 기와'

2024년 1월 1일, 규모 7.6의 지진이 이시카와현 노토반도를 강타했다. 특히 스즈시에 큰 피해를 남겼는데, 약 5,600가구 중 절반 가까이가 지진으로 피해를 입고 붕괴 위험 판정을 받아 공비 해체(소유자의 신청에 따라 시가 대신 해체·철거를 진행하는 제도) 대상이 되었다. 그 잔해 더미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윤기 나는 검은 기와 조각들 이였다.

검은 기와는 표면의 칠흑 같은 광택과 내부의 진한 오렌지색 대비가 특징적인 노토지역의 전통 건축 자재다. 열을 축적하는 성질이 있어 지붕에 쌓인 눈을 녹이는 데 적합하다고 알려져 있으며, 설국의 혹독한 기후에 적응해왔다. 하지만 이미 생산하는 공장은 문을 닫아, 더 이상 새로이 만들어지지 않는 재료다. 노토생산 검은 기와는 지진으로 무너진 집들의 잔해로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너진 채로 있는 집을 보는 것도 괴롭지만, 빈터가 되어버리면 노토기와의 기억이 멀어져버릴 것 같다"──피해자의 이 말이 프로젝트의 출발점이 되었다.

 


 
@TEAM TECTURE MAG

 

3자가 엮어내는 '순환과 재생'의 이야기

2025년 9월 1일, CACL, LIXIL, 나가야마 유코 건축설계사무소는 노토 검은 기와를 건축 자재로 업사이클링하는 공동 프로젝트를 정식 출범시켰다.

CACL은 규격 외로 폐기되는 공예품이나 도자기 조각을 재활용하는 기업이다. 대표 오쿠야마 준이치는 나가야마와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후타코타마가와 다카시마야 S·C 리모델링 프로젝트에서 구타니야키 도자기 조각을 벤치로 전환한 실적이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공비 해체된 주택에서 회수한 검은 기와를 지정 공장에서 분쇄한다. 분쇄한 조각을 장애 복지 시설 이용자가 포장하여 LIXIL로 발송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폐자재의 재생이 지역 고용 창출로도 이어지는 설계다.

 


@TEAM TECTURE MAG

 

'텍스톤'이 여는 신소재의 가능성

지진의 잔해로 남은 토노반도의 검은 기와를 받아들인 것은 LIXIL이 개발한 신소재 'textone(텍스톤)'이다.

텍스톤은 다양한 소재를 균일하게 섞어 고압 성형하는 LIXIL 고유의 배합 기술로 개발되었다. 높은 내구성을 확보하면서도 무도장으로도 아름다운 질감을 구현하며, 일반적인 콘크리트나 타일 대비 약 절반의 무게를 자랑한다. 잘 깨지지 않고 목재처럼 가공할 수 있으며, 대형 패널로도 생산이 가능한 범용성이 특징이다. 

"처음에는 검은 기와라고 해서 새까만 것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분쇄하니 안쪽의 오렌지색이 나타나 건축 자재·의장재로서 훌륭한 질감이 되었습니다"LIXIL 상무이사 하가 유타카의 말이다.  "검은 기와 내부의 오렌지색은 노토지역 흙만이 지닌 독특한 색으로, 단순한 재활용 건재가 아니라, 지역에 뿌리내린 문화가 새로운 가치로 재생산되는, 재활용 소재의 새로운 방식을 발견했습니다."

텍스톤의 기술 덕분에 기와 조각을 7mm 정도 입자감 있게 남길 수 있었고, 표면을 연마하면 검은색과 오렌지색이 어우러져 모자이크 같은 무늬가 된다. 이는 곧 노토의 풍경을 연상시키는 시각적 장치가 됐다.

 

 

건축가 나가야마 유코가 내다보는 '메시지를 전하는 건축 자재'

나가야마 유코는 건축 자재 업사이클링의 가치를 이렇게 설명한다. 

"건축 자재로 재생하는 것의 장점은 대량의 폐기물을 사용함으로써 순환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제작 과정에서 고용도 창출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것을 사용한 건축물을 보거나 체험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발신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2022년 Tokyo Midtown DESIGN TOUCH 2022에서 폐기 어망을 업사이클링한 '바다의 해먹'을 제작한 바 있다. 이후 전국 여러 장소 - 파나소닉 그룹의 사쿠라 광장, 히비야 공원, 아와지섬 등 전국을 순회하며 재생과 순환의 메시지를 발신해왔다. 이번에도 LIXIL과의 긴밀한 협업으로, 의뢰 후 1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노토반도의 검은 기와 함유 텍스톤’을 완성할 수 있었다.현재 시장에서는 콘크리트에도 따뜻한 흙색 계열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이 신소재는 수요와도 맞아떨어진다. 나가야마가 설계 중인 도쿄 대형 상업시설에서의 사용이 이미 확정되었으며, 내외장 마감재로 적용될 예정이다.

 


@TEAM TECTURE MAG

 

스즈시 시장이 맡긴 '자긍심과 보물'

프로젝트 발표 자리에는 스즈시의 이즈미야 마스히로 시장도 참석했다.

"작년 설날 규모 7.6의 지진, 쓰나미, 그리고 9월 폭우로 스즈시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공비 해체의 약 90%가 진행되면서 빈터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어 이즈미야 시장은 검은 기와에 대한 마음을 이렇게 전했다. "스즈시에서 검은 기와는 특징이며, 자긍심이며, 보물이였습니다. 하지만 부서진 가옥들이 계속 해체되고 사라져가는 상황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새로운 노토 기와가 새로 생산되지 않는 상황에서 건축 자재로 부활해  새 건축물의 재료로 사용되는 것은 매우 뜻깊습니다."

 

'창조적 부흥'이 제시하는 새로운 재난 복구의 형태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폐자재 재활용을 넘어선 의미를 지닌다.

첫째, 기억의 계승이다.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노토 검은 기와가 새로운 건축 자재로서 전국의 건축물에 사용됨으로써, 노토지역의 풍경과 문화가 물질적으로 계속 남는다.

둘째, 지역 경제에 대한 기여다. 기와의 회수, 분쇄, 포장 등의 공정에 장애 복지 시설 이용자가 참여함으로써, 부흥 과정 자체가 고용과 사회 참여의 기회를 창출한다.

셋째, 순환 경제 모델 구축이다. 재난 폐기물이라는 부의 유산을 가치 있는 건축 자재로 전환하는 시스템은 향후 재난 복구에서 새로운 모델 케이스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넷째, 창조성을 통한 희망 창출이다. '창조적 부흥의 상징'이라는 말이 상징하듯, 이 프로젝트는 피해 지역에 희망과 자긍심을 가져다준다. 파괴와 상실의 기억이 아름다운 소재로서 미래로 계승되어간다──그 과정 자체가 피해자의 마음의 복구를 뒷받침한다.

 

확대되는 가능성, 다음 단계로

LIXIL은 실험적 제조 단계를 넘어 실제 건축 프로젝트로의 적용을 준비 중이다. 특히 지역 환원과 협업을 중시하며, 향후 전국으로 보급을 목표로 한다.

나가야마가 설계하는 도쿄 대형 상업시설에서의 사용을 시작으로, 노토반도의 검은 기와를 함유한 텍스톤은 전국의 다양한 건축 현장에 쓰일 것이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노토지역의 아픔과 유산을 기억하고 발견할 것이다. 그러는 동안 이 건축 자재는 단순 재료를 넘어 이야기를 전하는 매개가 된다. 

 

 

  • 참여 기업: CACL, LIXIL, 나가야마 유코 건축설계
  • 프로젝트 출범: 2025년 9월 1일
  • 사용 예정 건축물: 나가야마 유코 설계 도쿄 대형 상업시설(내외장 마감재)
  • 소재: 노토반도 지진으로 무너진 가옥의 검은 기와 + LIXIL의 텍스톤 기술

기사원문링크>
https://www.designdb.com/?menuno=1283&bbsno=5116&siteno=15&act=view&ztag=rO0ABXQAOTxjYWxsIHR5cGU9ImJvYXJkIiBubz0iOTkxIiBza2luPSJwaG90b19iYnNfMjAxOSI%2BPC9jYWxsPg%3D%3D#gsc.tab=0

목록으로

뉴스레터 구독신청
완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