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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 사막에서 순환경제로, 칠레의 섬유재활용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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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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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 사막에서 순환경제로, 칠레의 섬유재활용 도전


칠레 섬유폐기물 문제는 최근 몇 년 사이 칠레 북부 타라파카(Tarapacá) 주를 중심으로 불법 의류 투기장이 급증하면서 그 심각성이 드러나고 있다. 이키케(Iquique) 자유무역지대에서 거래된 중고 의류가 버려지고 수천 톤씩 쌓이면서, 일명 ‘의류 사막’으로 불리는 약 300헥타르 규모의 섬유폐기물 지역이 형성됐다. 


<의류 사막>

[자료: La Tercera, 2025]
 
이는 단순한 폐기물 적치 문제가 아니라, 칠레가 전 세계 중고 의류 순환 구조의 ‘최종 부담국’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우려를 낳고 있다. 가장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결과는 환경오염이다. 버려진 옷에서 발생한 미세플라스틱은 수자원을 오염시키며, 소각 과정에서는 독성 가스가 발생해 지역주민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 나아가 면화 재배, 화학약품 가공, 운송 등 섬유 생산의 모든 단계는 막대한 물과 에너지를 소모하고, 그 과정에서 대량의 탄소를 배출한다.


생산자 책임 재활용제도(REP)법의 적용 확대
 

칠레는 세계 4위의 중고 의류 수입국으로, 연간 약 12만3000톤의 중고 의류를 들여오고 있다. 이로 인해 국민 1인당 연간 약 32kg의 섬유폐기물이 발생하고 있다. 총량은 57만 톤이 넘는데, 이는 도시생활폐기물의 약 7%를 차지하는 수치다. 아타카마 지역만 해도 매년 최소 3만9000톤의 의류가 버려지고 있어 섬유폐기물이 지역 환경과 폐기물 관리 체계에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칠레는 2016년 법률 제20920호를 통해 ‘생산자 책임 재활용 제도(Responsabilidad Extendida del Productor, REP)’를 도입하고, 재활용 촉진과 폐기물 감축을 추진해 왔다. 당시 우선 적용 품목에는 타이어, 용기·포장재, 윤활유, 전기·전자제품, 건전지, 대형 배터리만 포함돼 있었다. 이후 섬유폐기물 문제가 심화되면서 2025년 6월 칠레 환경부 결의서(Resolución Exenta) 제3914호에 따라 섬유제품이 REP 법 적용 품목으로 공식 추가됐다.
 
이에 따라 섬유제품은 REP 법의 근간인 ‘오염 유발자 부담 원칙(El que contamina paga)’과 ‘폐기물 발생자 책임 원칙(Responsabilidad del generador de un residuo)’을 따른다. 이는 제품이 쓰임을 다한 뒤 발생하는 폐기물을 생산자나 수입자가 직접 회수하고 재활용 및 최종 처분까지 책임지도록 한다. 구체적인 의무는 ① 오염물질 배출·이전 등록부(Registro de Emisiones y Transferencias de Contaminantes, RETC) 등록, ② 연간 판매량 신고, ③ 수거·재사용·재활용 목표 달성 등이다. 



섬유제품의 REP 법 적용 확대는 칠레 환경부가 추진하는 2040 섬유 순환경제 전략(Estrategia de Economía Circular para Textiles)과도 맞물려 있다. 2023년 발표된 해당 전략은 공공기관, 민간기업, 시민사회, 학계가 참여하는 범부처 위원회에서 마련했다. 섬유폐기물 발생을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담고 있다. 주요 내용은 △에코디자인(Ecodesign, 제품의 설계 단계에서부터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고려하는 디자인 방식) 촉진 △혁신 지원 △재활용 과정의 고도화·전문화 등이다.
 
이와 함께 민간 영역에서는 지속가능 디자인 협회(Cámara Diseña Sustentable)가 의류 신제품을 대상으로 한 청정생산협약(Acuerdo de Producción Limpia, APL)을 추진하고, 섬유폐기물 관리 모델을 시험·평가한다. 또한 업계가 REP 법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순환 패션을 위한 각계 활동 
 
‘순환 패션(circular fashion)’이란 기존 생산-소비-폐기의 선형 구조에서 벗어나, 의류 제품의 디자인 단계부터 내구성·재활용성·수선 가능성을 고려하고 사용 후에는 재활용·재사용 등을 통해 제품의 수명과 자원 효율성을 증대하는 시스템이다. 최근 칠레에서는 창업계, 학계, 시민사회가 순환 패션 개념을 중심으로 섬유폐기물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다양한 솔루션을 내놓고 있다.
 
먼저, 칠레 스타트업인 의류 중고 거래 플랫폼 Vestuá는 2018년 설립 이후 100만 벌 이상의 의류를 재유통해 왔다. Vestuá는 고객으로부터 의류를 직접 수거한 뒤, 인공지능을 활용해 촬영 및 분류한 후 자체 플랫폼에서 판매하는 전면 중개 방식으로 운영된다. 동시에 패션기업이 재유통 의류 서비스를 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B2B 라인도 운영하고 있다. 2025년에는 글로벌 패션기업 H&M이 주도한 210만 달러 규모의 벤처 투자 유치에 성공해 멕시코 진출과 기술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또 다른 칠레 스타트업인 Ecocitex는 물과 염료를 사용하지 않는 재활용 공정을 통해 230톤이 넘는 의류를 산업용 충전재를 포함한 다양한 제품으로 재가공해 왔다. 특히 100% 국내 생산 체계를 바탕으로 고용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 




 
<칠레 스타트업 순환 패션 창업 사례>

[자료: 각 기업 홈페이지, 2025]
 
한편, 우루과이에서 설립된 Vopero는 2024년 칠레의 대형 유통그룹인 Cencosud에 인수돼 현재는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칠레 시장에서 운영되고 있다. Vopero는 제품 엄선과 고객 경험을 중시하는 서비스를 통해 200만 벌 이상의 의류를 재유통했다. Cencosud 계열 백화점 의류 수선·개인화 서비스(ParisLab), 전자제품 재활용 프로그램(TecnoCircular) 등 여러 지속가능성 전략과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순환 패션 전략>

[자료: Cencosud 홈페이지, 2025]
 
대학 차원에서도 섬유폐기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실험적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칠레대학교(Universidad de Chile) 학생들은 ‘Reutilizatex’ 프로젝트를 통해 버려진 의류와 페트병으로 방음·단열 패널을 제작하고 있다. 비오비오대학교(Universidad del Bío-Bío)는 ‘Desierto Textil’ 프로젝트를 통해 아타카마 사막의 의류 폐기물 문제를 기록·연구하고, 현장 조사와 전시회를 운영해 사회적 경각심을 제고하고 있다. 이후 재활용 섬유와 목재 폐기물을 결합한 신소재를 개발해 지속 가능한 건축 자재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민 참여형 활동으로 주목할 만한 사례로는 칠레 최대 오프라인 쇼핑몰 체인 Mallplaza와 순환 패션 캠페인 기획사 The Ropantic Show가 추진한 의류 교환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시민들이 가져오는 양호한 상태의 의류에 대해 토큰을 지급해, 다른 의류나 브랜드가 기부한 신제품으로 교환할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해 시민들에게 지속 가능한 패션을 실천하는 책임 있는 소비 경험을 제공하는 한편, 의류의 조기 폐기를 막고 자원의 선순환을 유도한다.


KOTRA 산티아고 무역관은 칠레 비영리 환경단체 Fundación Basura의 타마라 오르테가 대표와 인터뷰를 진행해, 칠레 내 순환 패션 확산을 위한 과제와 전망을 들었다. 오르테가 대표는 "재활용과 순환 패션이 실질적인 효과를 내려면 소비자·기업·정부가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비자는 중고 의류를 자원으로 인식하고, 기업은 내구성과 재활용성을 고려한 제품을 설계해야 하며, 정부는 명확한 정책과 수거·재활용 인프라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제품 수명 주기를 사실상 결정하는 주체가 기업인 만큼, 기업이 에코디자인을 도입하고 스타트업·시민 활동과 연대할 때 환경적·사회적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REP 법에 섬유제품이 포함된 것에 대해서는, 제도의 실효성은 향후 시행·감독 수준에 달려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REP 법이 제도적 틀을 넘어 생활 속 문화로 자리 잡으려면, 중고 의류를 손쉽게 기부·재활용할 수 있는 경로가 갖춰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르테가 대표는 "디자인·기술·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에 더해 사회적 책임 의식이 뒷받침될 때, 순환 패션 시장이 구조적으로 정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마무리


칠레는 지속 가능한 패션 산업으로의 전환을 향해 중요한 진전을 이루고 있다. 특히 REP 법 적용 품목에 섬유제품이 공식적으로 포함된 것은 중대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이와 함께 Vestuá, Vopero와 같은 재유통 플랫폼의 등장과 대형 쇼핑몰과 비영리단체 간 협력 프로젝트는 수천 명의 소비자 행동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들은 현대적이고 지속 가능한 소비 대안을 제시하며 새로운 소비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대안들이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제도적 기반과 철저한 감독뿐만 아니라, 기존의 선형적 폐기 중심 문화를 넘어서는 시민의식이 병행돼야 한다. 
 
이러한 칠레의 도전과 기회는 우리 기업에도 진출 가능성을 제시한다. 한국에서 시장 확대 중인 '섬유 대 섬유(Fiber-to-Fiber)' 화학적 재활용 기술과 같은 솔루션을 B2B로 공급하거나 현지 합작을 통해 생산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 또한, 재활용 기술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AI 자동 분류 시스템 역시 우리 기업이 충분히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다. 나아가, 단순히 기술을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칠레 순환경제 전략과 연계한 구체적인 사업 모델을 구축한다면 칠레의 지속 가능한 패션 시장에서 장기적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자료: 칠레 환경부(Ministerio del Medio Ambiente), 국회도서관(BCN), 지속가능디자인협회(Cámara Diseña Sustentable) 칠레대학교(Universidad de Chile), 비오비오대학교(Universidad del Bío-Bío), Diario Financiero, La Tercera, Emol, ESG Hoy, Vestuá, Ecocitex, Vopero, Cencosud, Mallplaza, The Ropantic Show 종합
 
<저작권자 : ⓒ KOTRA & KOTRA 해외시장뉴스>
 
원문기사링크 : https://dream.kotra.or.kr/kotranews/cms/news/actionKotraBoardDetail.do?SITE_NO=3&MENU_ID=180&CONTENTS_NO=1&bbsGbn=243&bbsSn=243&pNttSn=235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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