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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 건강을 위해서 달리는 '러닝'이 크게 주목 받고 있다. 러닝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단순하다. 다른 운동에 비해 별다른 장비가 필요 없는 데다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장점 덕분에 아침저녁으로 공원 곳곳에서 삼삼오오, 또는 혼자서 뛰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뛰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이들을 중심으로 '산책'이 각광을 받고 있는 중이다.
ⓒ 인스타그램 '힐링산책' 검색 결과 화면
산책을 취미로 즐긴다고 말하는 것은 조금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저 걷기만 하면 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의 산책은 기존과 조금 결이 다르다. 보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걷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을 위해, 아니면 주변 환경을 좀 더 음미하기 위해, 혹은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한 방법으로 산책이 재해석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따라 산책을 위한 콘텐츠들도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산책할 때 들을 만한 음악 리스트, 힐링 산책 코스 소개 등이 소셜미디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실제로 산책은 다양한 건강 효과를 가지고 있다. 캐나다 출신 요리책 작가 메릴린 스미스(Marilyn Smith)가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유행한 '방귀 산책(Fart Walk)'은 식후 가벼운 산책을 통해 소화를 돕고 가스를 배출하자는 운동이다. 그저 유행으로 치부하기엔, 이 가벼운 산책이 주는 효과는 실질적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식후 산책은 소화를 도울 뿐만 아니라 혈당이 급상승하는 것을 완화하고 대사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꾸준한 산책은 일부 암 발명 위험을 줄이고, 치매 예방에도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건강 관리가 일상 속 자연스러운 가치로 자리 잡은 지금, 산책 열풍은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산책을 더욱 즐겁게 할 수 있도록 돕는 요소들이 곳곳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사례는 나이언틱의 AR 게임 '피크민 블룸(Pikmin Bloom)'이다. '걷기를 즐겁게 하다'라는 콘셉트 아래 제작된 이 게임은 스마트폰을 들고 산책하도록 유도한다. 다양한 캐릭터와 육성 방법 덕분에 산책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필수 아이템으로 여겨지고 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세상 곳곳에 존재하고 있는 '피크민'을 찾아내고 육성하게 만드는 이 게임은 산책을 보다 즐거운 놀이로 만들고 있다.

ⓒ 넛지헬스케어 뉴스룸
https://blog.naver.com/nudgehealthcare/224058644273
'걷기만 해도 돈이 되는 만보기'로 잘 알려진 캐시워크는 지난해 지역 기반 걷기 서비스 '동네산책'을 출시했다. 이 기능은 현재 위치를 기반으로 산책이 가능한 장소를 추천하고, 해당 장소를 방문하면 캐시를 적립할 수 있어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난 10월 말에 출시 1주년을 맞이하여 공개된 주요 성과는 그 인기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 올해 9월 기준 일간 활성 이용자(DAU)는 전년 대비 69% 증가한 61만 명이었으며, 월간 활성 이용자(MAU)는 276만 명을 기록했다. 또한 누적 캐시 지급액은 약 39억 캐시에 달했다. 이를 통해 캐시워크가 이용자들의 일상 속 건강을 관리하는 앱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을 알 수 있다.
산책은 지역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는 데도 기여한다. 가벼운 동네 산책도 좋지만, 더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들도 인기를 얻고 있다. '경복궁 별빛야행', '덕수궁 밤의 석조전'과 같은 궁궐 야간 산책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마라톤 대회처럼 대회가 열리며 하나의 이벤트로 확장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한강나이트워크42K', '부산나이트워크42K'와 같은 무박 2일 산책 행사들은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며 산책 인구 확대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일상의 모든 것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하며, '낭만'을 중요시하는 Z세대는 산책 또한 색다른 경험으로 재창조하고 있다. 산책 활동과 산책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일상 속 작은 이벤트처럼 다루며, '산책 감도'라는 개념까지 만들어냈다. 산책을 그저 걷는 행위가 아니라, 일상의 질을 높이는 특별한 경험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세련되고 감성적인 곳을 일부러 골라 산책하며, 이런 성향을 가진 이들과 모임을 가지며 서로의 취향과 감성을 공유하는 커뮤니티로 확장시키고 있다.

ⓒ 출반사 반비
https://banbi.minumsa.com/book/445/
출판사 반비에서 출간한 『이다의 도시관찰일기』는 도시 속 산책과 관찰이 생각보다 휠씬 흥미로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관찰하지 않으면 결코 몰랐을 이상하고 사랑스러운 도시의 풍경들'이라는 소개답게, 작가의 관찰 기록은 우리가 세계와 이어져 있다는 생생한 감각을 전한다. 출간과 함께 엑스(X)에서 진행된 '도시 관찰 이벤트'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도시 곳곳을 걸으며 탐방하는 즐거움을 다시금 환기시켰다. 덕분에 소셜미디어에서는 산책길에서 마주한 감성적인 풍경이나 쉽게 볼 수 없는 순간들을 공유하는 게시물이 꾸준하게 늘고 있다. 이를 통해 산책이 이동을 넘어서 감성과 취향을 발견하고 확장할 수 있는 활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산책의 유행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모임을 통해 걷는 것뿐만 아니라 등산도 즐기는 이들도 증가하며 '소프트 하이킹(Soft Hiking)'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이는 자연을 즐기고 자신을 돌보는 데 초점을 맞춘 하이킹 방식을 뜻한다. 부담 없이 걷는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도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결국 이러한 흐름은 사회적 연결과 정신적 힐링을 추구하려는 욕구가 취미 활동의 형태로 나타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산책 열풍은 쉴 새 없이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빠르게 적응하기도 벅찬 시대에, 오히려 속도를 늦추고 여유를 느끼는 활동이 유행하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속도전에 휩쓸리는 사회 분위기와는 반대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지친 현대인의 마음이 드러난다. 일상 속 작은 휴식을 갈망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산책으로 이어진 셈이다.
산책 인구가 늘어나는 데에는 건강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다. 늦게까지 술자리를 이어가는 대신, 가볍게 걸으며 하루를 정리하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이 더 낫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이처럼 산책은 정신적인 위안과 신체 건강을 동시에 챙길 수 있는 활동인 만큼, 이에 대한 열기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