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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칼럼은 <원문: Neimark, B., Bigger, P., Otu-Larbi, F., & Larbi, R. (2024). A multitemporal snapshot of greenhouse gas emissions from the Israel-Gaza conflict. Available at SSRN 4684768.>을 참고, 이를 바탕으로 개인적인 의견이 반영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보이지 않는 전쟁의 대가
2023년 10월 7일 이후, 가자 지구 분쟁은 심각한 인도주의적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이 분쟁으로 인해 팔레스타인인 21,600명 이상, 이스라엘인 1,200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5만 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또한, 가자 지구 인구의 약 80%에 달하는 180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고 피난민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비극의 이면에는 우리가 놓치기 쉬운 또 다른 중대한 문제, 즉 '전쟁의 환경적 비용'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분쟁 중 군사 활동은 막대한 양의 화석 연료를 소비하고, 인프라를 파괴하며, 기후 위기를 가속하는 온실가스를 배출합니다. 이처럼 전쟁이 남기는 환경적 흔적을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이라고 하며, 이는 분쟁이 초래하는 또 하나의 핵심적인 대가입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A multitemporal snapshot of greenhouse gas emissions from the Israel-Gaza conflict(이스라엘-가자 분쟁의 온실가스 배출을 시기별로 분석한 스냅샷)” 연구는 가자 지구 분쟁을 사례로, 스냅샷(snapshot) 접근법을 통해 전쟁의 탄소발자국을 신속하게 분석함으로써 군사부문의 탄소배출량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전쟁으로 인해 탄소발자국이 어떻게 즉각적(immediate), 중간적(intermediate), 장기적(long-term)인 시간에 걸쳐 발생하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즉, 전쟁 중 다양한 오염으로 인해 발생된 탄소, 분쟁에 활용되는 터널, 장벽 등 인프라에 활용된 내재된 탄소, 전쟁 이후 파괴된 도시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미래 세대에게 전가될 막대한 미래의 탄소까지.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추적합니다.
군사 부문 탄소 배출량의 이해
전쟁으로 인한 탄소 배출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CEOBS(Conflict and Environment Observatory)*가 제안한 군사 부문 온실가스 보고 프레임워크를 개념적 틀로 사용합니다. 이 프레임워크는 군사 활동과 관련된 모든 배출원을 포괄적으로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며, 배출원을 다음과 같은 범주로 분류합니다. 이 범주들을 공장 운영에 비유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이러한 분석 틀을 바탕으로, 가자 지구 분쟁의 탄소 배출량을 구체적인 수치로 살펴보겠습니다.
가자지구 분쟁의 탄소 발자국 분석
1) 즉각적인 탄소 비용(전투 초기 60일)
여기서 분석하는 수치는 분쟁 초기 60일(2023년 10월 7일 ~ 12월 4일) 동안 발생한 직접적인 군사 활동에 대한 것입니다. 이는 데이터 접근성의 한계로 인해 실제 배출량의 일부만을 포착한 보수적인 추정치입니다.


<참고> 측정 방식, 주요 계수 및 가정 데이터
분쟁 초기 두 달 동안 발생한 총 탄소 배출량은 281,315 tCO2eq으로, 이는 20개 이상의 국가 및 영토 각각의 연간 총 배출량을 상회하는 규모입니다. 또한 약 75개의 석탄 화력 발전소가 1년간 가동될 때 배출하는 양과 맞먹는 수준입니다.
전투 행위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탄소 발자국이 남지만, 전쟁의 탄소 비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분쟁이 일어나기 오래전부터 존재해 온 군사 인프라에 숨겨진 내재 탄소(Embedded Carbon)를 살펴보겠습니다.
2) 군사 인프라에 내재된 탄소 비용(2007년 이후 16년 동안 구축된 방어/공격 인프라)
전쟁의 탄소 비용은 단기적인 전투 활동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분쟁 지역에 수년에 걸쳐 구축된 군사 인프라에는 막대한 양의 탄소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이는 인프라 건설에 사용되는 시멘트와 철강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온실가스가 배출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시멘트는 석회석을 가열하는 화학 반응 자체에서 CO2를 방출하며, 철강은 철광석을 녹이기 위해 막대한 양의 화석연료를 연소시키기 때문입니다. 가자 지구 분쟁과 관련된 두 가지 핵심 인프라의 내재 탄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참고> 측정 방식, 주요 계수 및 가정 데이터
이 두 인프라에 내재된 탄소 배출량을 합산하면 약 450,000 tCO2eq에 이릅니다. 이는 전쟁이 시작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기후에 막대한 부담이 가해지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여기에 앞서 분석한 즉각적인 전투 비용을 더하면, 그 규모는 33개국 이상의 연간 배출량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확대됩니다.
이외에도 전쟁이 남긴 파괴의 흔적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의 막대한 탄소 비용이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3) 재건을 위해 예상되는 장기적 탄소비용
전쟁으로 인한 탄소 배출의 가장 큰 비중은 전투가 끝난 뒤 진행될, 재건(Reconstruction) 과정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가자 지구의 약 100,000채에 달하는 건물이 파괴되거나 손상되었습니다. 이 건물들을 다시 짓는 과정은 기후에 엄청난 부담을 안겨줄 것이며, 이는 CEOBS 프레임워크에서 정의한 Scope 3 Plus 범주의 가장 크고 중대한 구성 요소에 해당합니다. 파괴된 도시를 복구하기 위해 자재들을 대규모로 생산하고 운송하는 모든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배출 될 것입니다.
이 시나리오에 따라, 파괴된 건물들을 재건하는 데(약 10만 채) 필요한 총 탄소 배출량은 최소 3,000만 tCO2e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며, 이 수치는 앞서 분석한 전투 및 인프라 배출량을 압도하는 규모입니다. 이 배출량은 전 세계 130개 이상의 국가 각각의 연간 배출량보다 많은 양입니다. 결론적으로, 전쟁이 남긴 물리적 파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의 탄소 배출이 분쟁 자체의 탄소 발자국을 압도할 만큼 거대한 기후 부담을 초래하는 역설을 보여줍니다.
종합 및 시사점 :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
본 측정은 2023년 10월 7일 이후 이스라엘–가자 지구 분쟁에서 발생한 군사 활동 및 인프라 파괴·재건에 따른 탄소 배출량을 전투 초기-중간-장기의 세 범주로 나누어 진행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전쟁이 인간의 삶뿐만 아니라 지구 환경에도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기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며 아래와 같은 한계와 시사점을 남깁니다.
● 전쟁의 막대한 기후 영향
이 분석은 전쟁에서 비롯된 탄소 발자국이 단일 사건이 아닌, 파괴적인 연속체임을 보여줍니다. 군사 인프라 형태로 지불된 일종의 탄소 선급금을 시작으로 실제 분쟁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최후 재건 단계에서는 다른 모든 배출량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탄소 부채를 남깁니다.
● 보수적 추정치의 한계
본 분석은 데이터 접근의 한계로 인해 실제 배출량의 '일부'만을 포착한 '스냅샷'에 불과합니다. 잔해 처리, 대규모 화재, 국제 구호 활동, 무기 재고 보충 등 수많은 'Scope 3 Plus' 배출원이 제외되었습니다. 따라서 실제 총 배출량은 이 보고서에 제시된 수치보다 훨씬 더 클 것이 분명합니다.
● 투명한 정보 공개의 필요성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군사 부문의 탄소 배출량 보고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체계적이고 정확하게 관리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사례는 군사 부문 배출량이 더 이상 '국가 안보'라는 장막 뒤에 숨을 수 없는 시급한 기후 문제임을 증명합니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체제하에서 군사 배출량을 의무적으로, 그리고 투명하게 보고하도록 하는 것은, 기후 위기 대응의 '블랙박스'를 여는 필수적인 첫걸음입니다.
본 연구는 이스라엘–가자 지구 분쟁이 남긴 탄소 발자국을 세 단계(즉각적·중간·장기)로 나누어 살펴 보았습니다. 이를 통해, 전쟁은 사람의 생명뿐 아니라 지구의 기후에도 깊고 장기적인 상처를 남긴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하였습니다. 또한 여기서 주목할 점은 본 분석이 실제 배출량의 일부만을 포착한 보수적 스냅샷이라는 사실입니다. 전쟁으로 발생되는 화재, 잔해 처리, 도로 복원, 국제 구호 활동, 무기 재비축 등 수많은 ‘보이지 않는 배출’은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군사 활동이 기후 위기 논의에서 얼마나 큰 공백으로 남아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전쟁이 초래하는 기후 비용을 정확히 이해하는 일은 단순한 환경 분석을 넘어, 분쟁과 기후 위기의 상호작용을 줄이고 인간 안보를 지키기 위한 필수적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군사 부문 탄소 배출량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기후 정의와 인류의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입니다.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기후 위기의 불씨가 더 크게 타오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국제사회는 더 정확한 데이터, 더 엄격한 규제, 더 강력한 정치적 의지를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사회적가치연구원 SV측정센터 선임연구원 정다교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