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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손에 쥔 순간, 우리는 이미 하나의 설계된 환경 속에 들어간다. 빨간 배지, 짧은 진동, 예고 없이 도착하는 푸시 알림. 그것들은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구조다. 사용자의 주의(attention) 자체를 자원으로 환산하는 ‘어텐션 이코노미’의 논리에 따라 정교하게 설계된 장치들이다. 기술은 더 오래 머물게 하고, 더 자주 반응하게 하며, 더 깊이 몰입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그러나 지금, 기술과 주의의 관계를 둘러싼 근본 질문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기술은 인간의 시선을 붙잡아야 하는가, 아니면 돌려주어야 하는가. 의존을 유도하는 이른바 ‘다크 패턴’에 대한 비판은 규제 담론으로까지 확장되고 있으며, 산업 내부에서도 다른 설계 철학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감지된다.
이러한 시대의 임계점에서 급속히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개념이 있다. Calm Technology® —— 줄여서 ‘Calm Tech(캄 테크)’다.

1995년의 예언이, 2020년대에 비로소 현실이 되다
Calm Tech의 기원은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록스 팔로알토 연구소(PARC)의 연구자 마크 와이저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심오한 기술은 사라지는 기술이다.”
그는 기술이 언제나 인간의 주의를 점유하는 존재가 아니라, 필요할 때만 중심으로 떠오르고 평소에는 주변으로 물러나는 상태를 이상적인 형태로 보았다. 스마트폰도 SNS도 존재하지 않았던 당시, 이 통찰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대를 향한 사유에 가까웠다. 그러나 2020년대에 이르러 우리는 비로소 그것이 미래 예측이 아니라 설계의 원칙이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 사상을 현대적 디자인 언어로 체계화한 인물이 앰버 케이스다. 사이보그 인류학자이자 기업가인 그녀는 Calm Tech를 여덟 가지 설계 원칙으로 재정의했다. ‘필요 최소한의 주의만을 요구할 것’, ‘실패하더라도 기본 기능을 유지할 것’, ‘익숙한 사회적 관습을 활용할 것’——이 원칙들은 단순한 UX 지침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원하는 방식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철학적 입장을 드러낸다.
한때는 이상론으로 치부될 수도 있었던 이 사상이 이제 세계 주요 테크 기업들의 실질적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케이스는 그 확산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이 더 깊고 더 잘 생각할 수 있는 도구와 환경——그런 것을 만들고자 하는 기업들 사이에서 관심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습니다. 항공기 제조사, 대학 디자인팀, 소프트웨어와 노트북 제조사, 일본 자동차 기업들로부터도 문의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녀가 특히 강조하는 변화는 Calm Tech의 적용 범위가 더 이상 ‘디바이스’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오피스나 호텔 같은 공간을 대상으로 한 ‘Calm Tech for Spaces’ 분야도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CO₂ 농도 관리나 조명의 질 같은 요소들이 사람들의 사고와 마음의 평온함에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술이 물리적 환경 전체로 확장되는 순간, Calm Tech는 단순한 제품 설계 방법론을 넘어선다. 그것은 화면이나 인터페이스가 아니라 생활 조건 자체를 설계하는 사상, 다시 말해 인간이 생각하고 느끼는 환경을 조율하는 디자인 패러다임으로 기능하기 시작한다.
'인증'이라는 방패——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화
개념의 설득력이 높아질수록, 피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겨났다. 그다지 Calm(고요)하다고 할 수 없는 제품에도 'Calm Tech'라는 말이 손쉽게 붙여지게 된 것이다. 개념의 희석을 막기 위해 케이스는 2024년 말 Calm Tech Institute를 설립하고, 81개 항목의 평가 기준을 갖춘 「Calm Tech Certified™」 인증 제도를 출범시켰다.
인증이 평가하는 6가지 카테고리는 주의, 주변 시야, 내구성, 빛, 소리, 그리고 소재——이것들은 공교롭게도, 오랜 세월에 걸쳐 일본의 뛰어난 프로덕트 디자인이 소중히 여겨온 가치관과 깊이 공명한다.
일본 문화와의 깊은 친화성——'와비사비'와 '마(間)'의 선견성
케이스가 2024년 말 방문한 교토에서의 경험은 그녀의 사상을 한층 더 깊게 했다. 일본의 고가구와 생활 도구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것들이 Calm Tech의 원칙과 정확히 같은 정신적 근거를 지니고 있음을 그녀는 몸으로 느꼈다.
"일본의 디자인은 이미, 디테일·버튼·텍스처·조화에 있어서 서양의 많은 디자인보다 훨씬 세심하고 깊이 있게 고민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도 소니 카메라, 워크맨, 야마하 리시버, 닌텐도 게임보이, 종이접기, 화지(和紙) 램프……일본 디자인에 둘러싸여 자랐습니다. 자연에 귀 기울이고 천천히 관찰하는 것에서 태어나는 디자인의 방식——일본에는 그것이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다고 느낍니다."
'와비사비(侘び寂び)'가 여백과 무상함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마(間)'가 침묵에 의미를 부여하며,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가 의도적인 배려를 보이지 않게 만든다——이것들은 Calm Tech가 설계 원칙으로 내세우는 '주변으로의 스며듦', '최소한의 간섭'과 사상적으로 훌륭하게 일치한다.
일본의 인하우스 디자이너들이 당연한 전제로 실천해온 세밀한 배려는, 그동안 '전달되기 어려운' 것으로서 국제 시장에서 과소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Calm Tech'라는 세계 공통의 언어를 획득함으로써, 그 가치는 비로소 글로벅 맥락 속에서 가시화될 가능성을 얻는다.
그 가능성을 가장 먼저 형태로 만들어낸 곳이 교토에 거점을 둔 mui Lab이다. 천연 목재를 소재로 한 인터페이스 'muiボード(mui Board)'로 Calm Tech 인증을 취득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오모테나시'의 사상이 그대로 글로벌 인증 기준을 충족한다는 사실은, 일본 디자인 산업 전체에 시사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가전·정보기기 제조사, 자동차 산업, 나아가 건축·공간 디자인 영역에서도 이 인증은 자사의 문화적 축적을 경쟁 우위로 전환하기 위한 설득력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다.

Calm Tech 인증을 받은 제품 사례. 일본에서는 현재 교토의 mui Lab ‘mui board’가 유일하게 인증을 획득했으며, 조만간 몇몇 다른 일본 제품도 추가로 발표될 예정이다.
Calm Tech Institute의 앞날에 대해, 케이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 말은 스타트업 문화의 속도에 대한 명확한 이의 제기였다.
"저희는 벤처 캐피탈을 가진 스타트업이 아닙니다. 인증 기관이 올바르게 성장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무를 심어서 3년 후에 베어 집을 짓겠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가 키우고 싶은 것은, 오랜 세월에 걸쳐 오를 수 있을 만큼 크게 자라고, 많은 종(種)에게 생태계를 주는 그런 나무입니다. 플랫하고 버튼 없는 화면 일색의 시대를 끝내고, 좋은 디자인이 다시 우리의 손으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분기별 성장 지표에 얽매이지 않고, 문화로서 뿌리를 내리겠다는 그 선언은, 최근의 생성 AI 투자 경쟁의 열기와 대비될 때 더욱 선명한 고요함을 드러낸다.
기술이 더 이상 인간의 주의를 점유하지 않는 방향으로 설계되기 시작하는 시대. 그 변화를 확인할 첫 행사가 도쿄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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