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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는 더 이상 한순간의 유행이 아니라, 일상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만큼 이제는 예전처럼 신선한 감동을 주는 요소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 사람들이 새롭게 주목하는 것은 무엇일까. AI와 로봇들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오늘날, 사람들의 시선은 레트로를 넘어서 '고미술(古美術)'로 옮겨가고 있다. 그저 집 안에서 먼지만 쌓이다가 버려질 운명에 처할 물건들이 다시금 새로운 의미와 즐거움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 박민정
고미술은 오래된 미술품과 옛 물건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장르 경계가 뚜렷한 편은 아니다. 미술품과 공예품, 생활용품의 구분 역시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흔히 100년 이상의 물건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는 연대보다 한 시대의 생활방식과 미감, 기술, 신앙 등을 담고 있는지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러한 이유로 반닫이, 소반, 등잔대, 민화, 도자기 같은 소품부터 대형 목가구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대상이 고미술로 인식되고 있다.
시간의 결을 품은 물건들을 찾기 위해 사람들의 발길은 예상치 못한 곳으로 향하고 있다. '힙지로'라고 불리는 을지로나 최근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성수동이 아니라, 서울 동대문구의 '답십리'가 그 중심에 있다. 이 일대에 고미술 상가가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이 상권은 답십리역 인근 삼희아파트 일대와 장한평역 주변 우송·송화빌딩 등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그 시작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에 들어 아현동과 황학동 등지에 흩어져 있던 고미술 상인이 이곳으로 모여들면서 본격적인 상권을 이루었다. 과거 골동품 거리로 명성을 얻었던 인사동 역시 임대료 상승 등의 변화 속에서 점차 사그라들었고, 자연스럽게 답십리가 새로운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 박민정
현재 이곳에는 20·30대 젊은 방문객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이들의 방문 이유는 다양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고미술에 대한 깊은 지식을 바탕으로 방문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그 대신 가벼운 흥미와 호기심에서 출발한 발걸음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변화의 기반에는 이른바 '2세대 가게'들의 역할이 크다. 지난해부터 '고복희', '호박 포크 아트 갤러리', '오브(OF)' 등이 잇따라 등장하며 젊은 감각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들의 감각적인 연출과 적극적인 홍보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며 자연스럽게 관심을 확장시킨 것이다.


ⓒ 박민정
디자인·패션 관련 업계 출신들이 만들어낸 공간은 기존의 상가와 결을 달리하는 모습이다. 복도까지 물건이 빼곡히 들어선 전통적인 진열 방식과 달리, 이들은 여백과 분위기를 활용해 공간 자체에 하나의 서사를 부여한다. 정갈하게 정돈된 공간 디자인에 더불어 눈길을 끄는 것은 각 공간을 운영하는 이들의 '개성'이다. '오브'는 선비의 정서를 연상시키는 절제된 검은색 공간으로 차분한 몰입을 유도하고, '고복희'는 향을 비롯하여 이국적인 분위기로 시선을 끈다. '호박 포크 아트 갤러리'는 패션과 고미술을 자연스럽게 결합했다. 소반과 티셔츠, 모자 등이 한 공간에 어우러지는 낯선 조화를 만들어낸다.


ⓒ 박민정
이러한 해석과 연출은 젊은 세대의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냈다. 실제로 이들 공간에서는 기존 상가보다 훨씬 젊은 연령층의 방문객을 찾아볼 수 있으며, 그저 물건을 구매하기보다는 공간의 분위기를 체험하고 감각을 소비하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고풍스러운 미감을 새롭게 접하고 물건이 지닌 시간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여기에 '답십리 앤틱 야시장' 같은 행사가 진행되며 사람들에게 고미술의 매력이 입소문을 타고 전해지고 있다.
답십리 고미술거리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일대에 대한 개발 논의도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지난 4월 9일 동대문구청은 답십리 고미술상가와 답십리 영화미디어아트센터, 그리고 주위 상권을 연계하여 체류형 관광을 가능하게 하는 '답십리 헤리티지 프로젝트'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연간 100만 명 방문객 유치와 더불어 신규 일자리 800개 창출, 상권 매출 증가, 점포 생존율 개선 등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과거의 유산이 현재의 감각과 만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흐름이 미래의 가능성을 엿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트렌드의 힘을 느낄 수 있다.

ⓒ 박민정
답십리와 마찬가지로, 이태원의 '앤틱가구거리'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6호선 이태원역 3,4번 출구를 따라 이어진 이 거리는 1960년대 인근 미군부대에 근무하던 군인들이 본국으로 귀환하면서 사용하던 가구들을 내놓은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점차 시장의 형태를 갖추며 아시아·유럽·미주 등 다양한 지역의 고가구 상점들이 모여 거리가 형성되었다. 오랜 시간 축적된 거래와 유통을 바탕으로 현재는 국내외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규모의 앤틱 마켓으로 자리 잡았다. 답십리 고미술상가와 달리, 이곳에서는 서양 문화를 기반으로 한 앤틱·빈티지 가구와 소품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 박민정
이태원 앤틱가구거리는 어디에서나 보기 힘든 독특한 희귀한 물건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기에 카페나 펜션, 주거 공간을 꾸미려는 이들에게 실용적인 시장으로 기능했다. 특히 1980-90년대 전성기에는 수억 원대 가구가 거래될 정도로 활기를 띠었고, 물건이 부족해 판매가 어려울 만큼 높은 수요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곳 역시 변화의 흐름을 겪고 있다. 고가 제품을 구매하기보다 영화나 광고 촬영을 위한 소품으로 대여하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판매 중심의 구조는 점차 렌털 위주로 재편되는 추세다. 여기에 한남뉴타운 제2구역 재건축 사업까지 맞물리며 거리의 존속 여부 또한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상인들은 힘을 모아 주말 벼룩시장과 '이태원 앤티크 스트릿'과 같은 행사를 운영하며 방문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거리에 들어서자마자 유럽의 한 거리를 걷는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소품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는 여전히 특별하다. 여러 문제들이 산재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풍경은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이들에게도 아날로그적 매력을 환기시키며 꾸준히 발걸음을 이끌고 있다.

ⓒ 박민정
이처럼 사람들이 고미술과 앤틱을 찾는 이유는 그 속에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간직한 물건들은 대량생산된 새 제품이 지니기 어려운 깊이를 품고 있다. 물건에 남아 있는 흔적을 더듬고, 그 속에 축적된 시간과 생활 방식을 함께 경험하는 일은 이미지와 정보 중심의 빠른 소비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또 다른 감각을 제공한다. 효율과 속도를 중시하는 소비 방식에 피로를 느낄수록, 손으로 만지고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실재하는 것'에 대한 가치가 오히려 더 크게 다가온다.
여기에 자신이 직접 겪지 않은 시대에 대해 향수를 느끼는 '아네모이아(Anemoia)' 감성이 더해지면서 고미술과 앤틱은 단순한 취향을 넘어 정서적 위안을 제공하는 대상으로 확장되고 있다. 빠르게 소비되고 사라지는 것들 사이에서 오래된 물건이 지닌 지속성과 서사는 일종의 균형점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이러한 흐름을 고려할 때, 고미술을 기반으로 한 감각과 소비는 하나의 취향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 시대의 피로와 불확실한 사회 환경 속에서 아날로그적 경험을 통해 감각과 시간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